이제 여기서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고자 한다. 내 이름은 변 강금. 그것은 아까 소개한대로 한학을 하시는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고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라는 시골에서 가난한 농사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판운리는
지금도 오지에 가깝지만 당시에는 학교도 10리나 떨어진 곳에 있는 깡촌이 었다.
나는 그 곳에서 강냉이를 먹으며 자랐다. 어릴 때부터 키가 작고 병약해 운동도 잘하지 못했다. 나는 영월군에서 중학교 를 마친 뒤 무작정 상경을 해서 자동차 정비소에 취직을 해 정비 기술을 배웠다.
내가 일을 하던 정비공장 2층에 봉제공장 하나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여공들이 많았다. 나는 그곳에 다니는 한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나이는 나보다 서너 살이 어려 보였는데, 긴 생머리를 두 줄로 땋아 늘어트렸고 체크무늬
부라우스와 항아리 치마를 입고 다녔다.
나는 그 아이가 좋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정은숙. 나와 눈이 마주치면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 얼굴도 변변하게 볼 수 없었다.
나는 밤마다 은숙이의 아름다운 얼굴을 떠올리며 오형제로 수음을 했다. 그 무렵 나는 잠을 자다가도 몽정을 하는 그런 시기였다.
그러나, 나는 말 주변이 없었다. 나는 은숙이와 데이트를 하는 무수한 꿈을 꾸면서도 한 번도 만나자거나 대화를
시도해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행운아였다. 내가 쉬는 어느 날---주택가 담장에 장미꽃이 만발한 것을 보면 봄이었을 것이다---
은숙이가 나에게 먼저 데이트를 신청해 왔다.
"저 영화구경 가지 않을래요?"
은숙이는 머뭇머뭇하면서 나에게 말을 꺼냈다. 나는 은숙이가 내 앞에서 또렷한 말씨로 말을 걸어오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런 얘기는 내가 먼저 꺼내고 싶었던 얘기였다.
내가 밤마다 얼마나 은숙이를 그리워하고 은숙이와 발가벗고 나쁜 짓을 했는지 은숙이가 알면 아마 까무러쳤을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이 꿈과 상상속에서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 무렵에 열 아홉 살이었던 나는 은숙이와 그 짓이 하고
싶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무슨 영화인데 ?"
은숙이가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본심과 달리 거만하게 튕겼다.
"아무거나."
"난 중국영화 아니면 안봐."
"나도 중국 영화 좋아해."
"니가 시켜주는 거야?"
"응."
은숙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옷입고 나올게 기다려."
나는 은숙이를 정비공장 앞에 세워놓고, 공장에 딸린 기름냄새 잔뜩 배인 방에서 옷을 갈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나란히 주택가 골목을 걸었다.
날씨는 좋았다. 늦은 봄 햇살이 주택가 담장에 붉은 장미꽃을 주렁주렁 열리게 했고 일요일이라 주택가는 조용했다. 은숙이는 산뜻한 여름 옷을 입고 있었다. 스커트는 여전히 항아리 스커트였으나, 위에는 낡은 체크 무늬 부라우스 대신 눈이 부시게 하얀 인조 실크 부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나는 행복했다.
은숙이에게서는 여자 특유의 살냄새와 함께 화장품냄새까지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영화는 남영동에 있는 성남극장에서 보았다. 오전에 시작하는 영화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뒷자리에
앉아서 껌을 질겅질겅 십으며 영화를 보았다. 지금은 영화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형편없는 주먹 싸움 영화였지만,
은숙이가 옆에 있어서 나는 마냥 가슴을 설레며 보았다.
"짜장면 먹을래?"
영화가 끝나자 은숙이가 나에게 물었다. 벌서 오후 1시30분이 었다.
"그래."
나는 은숙이와 함께 중국집으로 갔다. 그러나 짜장면 값은 내가 계산했다.
"남산 구경 갈까?"
은숙이가 물었다.
"응."
나는 쾌활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남대문 시장 앞 에서 내린 뒤에 남산으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은숙이는 남산을 걸어 올라갈 때 내 팔에 제 팔을 끼었다. 내가 놀라서 쳐다보자 배시시 웃었다.
나는 은숙이의 미소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 게다가 걸을 때마다 은숙이의 봉긋하고 말랑거리는 가슴이 내 팔뒤꿈치
에 닿아 기분이 미묘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랫도리가 뻐근하여 그것을 은숙이이게 감추느라고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참 좋다."
은숙이 남산 팔각정에 올라서서 서울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보며 중얼거렸다. 나도 은숙이와 나란히 서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기분이 울적했다. 서울 시내는 빌딩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나는 기름때 묻은 옷을 입고 봉제공장 미싱사인 은숙이와 데이트를 하고 있는 처지였다. 서울에 올라올 때는 돈을 무지무지하게 많이 벌겠다고 청운의 꿈을 품고 올라왔으나 서울이 그렇게 만만하지도 않았고, 돈을 벌기는 커녕 하루하루 연명을 하는 것도 버거웠다.
나는 사실 은숙이와 데이트를 하고는 있었으나 주머니에 돈 이 별로 없었다. 남들처럼 맛있는 것도 사먹을 수도
없고 좋은 옷을 사 입을 수도 없었다.
정비공장에서 나오는 돈은 기술을 배우는 입장이라 용돈도 되지 않았다. 그것도 제 달에 꼬박꼬박 주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마음 내킬 때 주었다. 용돈은 커녕 일을 잘못한다고 오히려 스패너나 몽키로 얻어맞기 일쑤였다.
"그래.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보여 좋아."
"저기는 케이블카인 모양이야."
"타는데 비쌀 거야. 저런 건 부자들이나 타는 거야."
"타고 싶지는 않아."
은숙은 나를 쳐다보며 방긋 웃었다.
오후 3시쯤이 되자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빗방울이 후두득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오던 길로 되돌아 남산을 내려 왔다.
그날 이후 은숙이는 나와 마주치면 눈웃음을 치곤 했다. 나도 은숙이에게 눈웃음을 쳐주곤 했다.
우리는 그렇게 6개월 여를 만났고 어느 날 키스를 했다. 어두운 골목에서였다. 나는 그날 은숙이의 옷을 벗기고
그 짓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고 있었다. 은숙이의 여리고 여린 가슴을 만지거나 스커트 안에 손을 넣어 허벅지를
더듬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지나가서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목적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은숙이도 내가 싫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방이 없었다. 은숙이도 나도 여관에 들어갈 수 있는 돈이
전혀 없었다.
어느날 은숙이는 봉제공장에서 사라졌다. 나는 은숙이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으나, 은숙이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봉제공장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1년이 후딱 지나갔다. 나는 군대에 입영할 나이가 되었고, 입영하기 전에 딱지를 떼야 한다는 친구들의 말에 청량리 588로 몰려갔다.
그날은 비가 오고 있었다. 오후 4시쯤 되었을 때였다. 비 때문에 사방은 어둑어둑했고 여자들이 우산을 들고 나와 거리에 꽃처럼 피어 있었다.
"오빠 놀다가요."
"오빠 서비스 잘해 줄게."
우리가 골목으로 들어서자 여자들이 우리에게 우르르 몰려와 팔을 잡아 끌었다. 나는 그 중에 한 여자를 따라 들어갔다. 단발머리의 예쁘장한 여자였다.
"꽃값 줘요."
여자를 따라 좁고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자 벌집같은 방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여자는 그중의 한 방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간 뒤에 돈부터 요구했다.
나는 여자에게 돈을 주었다. 여자는 돈을 받자 잠간 기다리라고 한 뒤에 밖으로 나갔다.
나는 기다렸다.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가 듣기 좋았다.
방안은 어두웠다. 손바닥처럼 작은 창에는 얼룩이 묻은 분홍색 커텐이 쳐져 있었고, 방 한쪽에 요가 깔려 있었다.
비 때문 인지 방안은 어둑스레 했다. 여자가 돌아왔다.
"미안해요."
여자가 눈웃음을 친 뒤에 항아리 스커트의 호크를 따고 지퍼를 내렸다. 여자는 스커트 안에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나는 옷을 벗었다. 여자가 위에는 셔츠 차림인채로 요 위에 누웠다.
"빨리 해요."
여자가 나를 재촉했다. 나는 여자의 위에 엎드렸다.
"뭐해?"
여자가 다시 나를 재촉했다.
"어떻게 하는 거지?"
나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아직 여자 경험이 없었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
여자가 눈을 깜박거리고 있다가 물었다.
"응."
"정말?"
"응."
"그럼 총각이란 말이야? 아직 딱지도 못떼었어?"
"오늘 딱지 떼러 온 거야."
나는 어눌하게 대답했다. 여자의 나신에 올라갔으나 숙맥처럼 어떻게 해야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웬일이니?"
여자의 눈이 묘하게 반짝거렸다. 다음에 여자의 눈은 횡재했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내가 총각을 따먹게 생겼네."
"어떻게 하는 거야?"
나는 얼굴이 벌개져서 물었다. 부끄럽고 챙피했다.
"정말 몰라?"
"모른다니까."
"호호..."
"왜 웃어?"
"미안해. 나 솔직히 기분이 무지무지 좋다. 사실 어젯밤 돼지 꿈을 꾸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
나는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아."
"아이 화내지 마."
"어떻게 하는지나 빨리 말해 봐. 얼른 해치우게..."
"이거는 얼른 해치우는게 아니라 서서히 즐기는 거야. 그러니 서두르지 마 응? 내가 잘 가르쳐 줄께."
여자가 다정하게 말질을 했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알았어."
여자는 나에게 일어나라고 하더니 나를 요 위에 눕혔다. 나는 눈을 감고 잠자코 여자가 하라는대로 했다.
"꼬추가 죽었어."
"응?"
"긴장했나 봐. 걱정하지 마. 처음엔 누구나 그러니까..."
여자가 어떻게 했는지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다. 아마 여자는 엎드려서 손으로 자극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페라치오를 했는지도 모른다.
얼마후에 여자가 손으로 내 물건을 잡아서 자신에게 인도했고, 나는 부드럽고 깊은 동굴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머나 벌서 끝내...?"
나는 너무나 빨리 끝났다. 아니 너무나 빠르게 동정을 바쳤다. 여자가 몇 번 요분질을 하자 내 몸에 팽팽하게
부풀어 있던 것이 여자를 향해 맹렬하게 쏘아져 나갔고 그것으로 끝이 었다.
허망한 일이었다.
여자는 뒷처리를 하면서 너무 빨리 끝났다고 실망하지 말고, 다음에 찾아오라고 했다. 그때는 정말 세세하게
가르쳐주겠다고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여자의 방을 나왔을 때 나는 구역질이 나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빗발은 더욱 굵어져 있었다.
나는 지금도 여자의 방에서 풍기는 기이한 냄새, 처음으로 여자와 살을 섞은 부드러움, 어둠스레한 방에서 처음으로 본 여자의 나신, 그 여자 허벅지 사이의 비밀스러운 곳을 때때로 머릿속에 떠올린다.
나는 여자의 말대로 돈이 생기면 청량리 588을 찾아갔다. 여자는 자신의 말대로 소위 방중술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스레 익히는 것이었다. 여자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나는 여자와 접구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나는 여자의 집을 향해 가다가 팔을 잡아당기는 한 여자가 낯이 익었다.
밤이었다. 골목은 어두컴컴하여 내 팔을 잡아당기는 여자의 얼굴을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놀다 가요."
여자가 나에게 속삭였다.
"나는 단골이 있어."
나는 여자를 뿌리쳤다.
"서비스 잘해 줄게."
"내 단골도 잘해 줘..."
"홍콩 보내 줄께."
"정말이야?"
나는 그때 갑자기 여자를 바꾸고 싶은 생각이 일어났다. 내가 늘 상대하던 그 여자에게는 이제 어느 정도 권태기가
느껴지고 있던 참이었다.